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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포커스] 터키 PKK의 정치노선 변화 : 민주적연방제를 중심으로

MHMEI 발간물/MHMEI 중동포커스

by 박종현 중동 2022. 6. 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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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

I. 서론 : 터키와 쿠르드족

현대 터키는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시절부터 강조되어온 튀르크 민족주의 이념의 여파로 자국 내의 쿠르드족들에 대해 철저한 탄압을 지속해왔다(Mango 1999, 1).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한 잔인한 탄압은 터키가 건국시절부터 지속되어온 숙원정책인 유럽 국가로 인정받게 되는 것, 즉 유럽연합(European Union) 가입에 큰 걸림돌로 작용해왔다(Taylor 1999).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 정부의 탄압은 여러 쿠르드족 분리주의 단체의 난립을 유발하기도 했다.

저명한 네덜란드 지리학자 de Blij는 지리학적 관점에서 테러 유형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누었는데, 바로 분리 독립, 즉 국경 재설정을 위해 투쟁하는 테러와 종교적 신념에 따른 포교의 일환의 테러가 그것이다(데 블레이 2015 238-242; 김대성, 이지은 2018 5 재인용). 터키에서 난립하게 된 쿠르드족 분리주의 단체 중 전자에 해당하는 것은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artiya Karkerên Kurdistan, PKK)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것은 쿠르드족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인 터키 헤즈볼라 혹은 쿠르드 헤즈볼라(Kurdish Hezbollah)이다(김대성, 이지은 2018 5). 본고가 집중할 것은 전자의 PKK이다.

PKK의 설립자이자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은 1978년에 창설된 PKK가 그동안 저지른 다수의 테러 범죄에 책임이 있다는 혐의로 1999년 터키 대(對)테러 당국에 체포되어 현재까지 수감 중이다(Daily Sabah 2021). 체포 당시 외잘란의 최종판결은 사형이었으나, 2002년에 터키에서 사형이 폐지되며 현재는 종신형을 살고 있다. 이렇게 PKK의 수장은 보고서 작성 시점(2021년)을 기준으로 약 22년째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쿠르드족, 특별히 PKK에 대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행정부의 정치적 부담은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터키 정부가 최근까지 쿠르드족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단적인 예시는 바로 터키軍의 2016년부터 시작된 3차례의 이른바 “시리아 북부 원정”을 들 수 있다. 터키軍의 이 일련의 시리아 북부 침공은 명목상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S) 잔당 퇴치였으나, 사실상 PKK의 잠재력을 박살하는 것이 목표였다.

2011년, 튀니지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로 촉발된 아랍의 봄의 여파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한창이던 2014년, 돌연 IS가 새로운 역내 행위자로 등장한다. 국제사회는 IS를 소탕하기 위해 미국이 이끌고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가 주축이 되는 이른바 대(對)IS 국제연합전선을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시리아 쿠르드족인 시리아 민주군(Syrian Democratic Forces, SDF)을 지원하게 된다. SDF는 IS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다국적ㆍ다민족 연합군이었으나(Al-Khalidi 2015), 군사적인 지휘는 시리아 쿠르드 민주동맹당(Partiya Yekîtiya Demokrat, PYD)과 연계되어 있는 군사조직 시리아 쿠르드 인민수비대(Yekîneyên Parastina Gel, YPG)가 주축이 되었었다. 터키 정부의 입장에서 시리아 PYD/YPG는 사실상 PKK의 시리아 지부였기에 당시 미국의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 지원은 터키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터키 정부는 외잘란이 체포되기 1년 전인 1998년, 시리아에 피난처(safe haven)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시리아 쿠르드족이 PKK의 이념에 많은 영향을 받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Rep. of Turkey Ministry of Foreign Affairs).

이렇듯 쿠르드족에 대한 정책은 터키와의 관계에서 가장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사안 중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對)터키 정책 또한 이러한 역학관계를 잘 반영하여 설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터키 현지에서도 영향력이 현재까지 유효한 PKK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 첫걸음으로 본고는 PKK의 정치이념에 대해 조명하기로 했다. PKK는 그 주요 가치를 태생부터 현재까지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하고 있으나, 1991년 소련 붕괴와 1999년 지도자인 외잘란의 체포로 노선을 어느 정도 수정해야할 압박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주창된 개념이 ‘민주적연방제(Democratic Confederalism)’였다. 본고는 외잘란의 민주적연방제를 더욱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 외잘란의 2011년 저작 『Democratic Confederalsim』 영어 번역본을 참고했다.

 

II. PKK의 정치노선 변화

1. 맑스-레닌주의

맑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는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하 ‘소련’)의 공식 국가 이데올로기였으며, 동구권의 소련 위성국가 및 괴뢰정권들의 정치이념이기도 했다. 또한, 맑스-레닌주의는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들의 계급투쟁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강조했기에, 이러한 정치적 콘셉트는 20세기 탈식민시대에 제 3세계에서 지배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다양한 분리주의 민족단체들에 영감을 주었다(IES&BS 2001). 또한, 국제적으로 반제국주의와 민족자결권에 대한 담론이 심화되면서, 제 3세계 공산주의 단체들은 맑스주의(Marxism)의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 개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은 민족국가, 분리독립국가 건설을 염원하던 터키의 쿠르드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터키 남부ㆍ동남부의 쿠르드족 청년들은 제국주의 미국이 케말주의 터키 정권을 지원하는 이상 쿠르드족의 민족국가 설립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이에 그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첫째, 터키가 주도하는 체제에 순응하면서 소극적인 민족투쟁을 통한 최소한의 쿠르드족 정체성 연명(延命), 둘째, 소련의 체제를 받아들여 제국주의 미국과 그 ‘괴뢰정권’ 터키 정부와 대립하는 것이었다(박주성 2017 141). 1923년 아타튀르크에 의해 선포된 터키 공화국 이후 줄곧 탄압받아 오고 그 자치권을 위해 투쟁해온 쿠르드인들은 체제 내에서의 투쟁의 한계를 체감했을 것이다. 터키 공화국 수립 이후 쿠르드족이 얼마나 탄압을 받았던지 1950년대에 터키를 방문한 한 영국 외교관은 “(터키에서는) 쿠르드 민족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분위기도 느낄 수 없었다. 이라크에 방문한 사람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그 분위기 말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McDowall 2004 402; Marcus 2007 18 재인용). 자연스럽게 이들은 소련의 맑스-레닌주의를 받아들인다.

터키 남동부 산리우르파주(州)의 전형적인 농촌에서 태어난 외잘란도 자연스럽게 맑스-레닌주의에 깊게 빠져들게 된다. 어려서부터 터키인 지주(地主)들에게 착취당하는 쿠르드족 농민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외잘란은 1960년대 후반, 20대를 맞이하며 점차 자신의 쿠르드 정체성에 대해서 고뇌하기 시작했다(Marcus 2007 15-20). 이후 1978년, 외잘란은 18명의 다른 쿠르드인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쿠르디스탄의 노동자들’을 의미하는 KK를 조직한다.

외잘란은 PKK를 창당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쿠르드 민족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이후 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쿠르드인들의 공산주의 낙원 건설을 목표로 했다(박주성 2017 156). 외잘란과 당시 PKK 지도부는 맑스-레닌주의를 사상적 토대로 터키를 ‘식민착취 국가’, 터키 동부ㆍ동남부의 쿠르디스탄을 피식민상태로 정의하며(이희수 1995 202) 이들에 대한 폭력 혁명을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으로 정당화하였다. 초기 PKK의 활동은 다소 폭력적인 무력투쟁과 대도시 테러의 형태로 많이 나타났는데(이희수 1995 201), 이는 바로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민족해방전쟁(War of National Liberation)과 폭력혁명론의 일환으로 정당화되었다. 특히 폭력혁명론의 경우 PKK의 “폭력은 쿠르디스탄에서 새로운 사회로 갈 수 있는 산파의 역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와 같은 선언을 통해 공개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장병옥 2005 333; 박주성 2017 156 재인용).

이렇듯 PKK는 반(反)제국주의, 반(反)봉건주의, 계급혁명을 추구하며, 적은 자본가 계급 터키인은 물론 터키인에 협력하는 쿠르드족도 포함시켰다. 이희수(1995)는 당시 PKK가 표방한 쿠르드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의 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외잘란의 PKK는 쿠르디스탄 공산주의 낙원 건설을 위한 혁명 4단계를 주창했다. 우선 쿠르디스탄에 거주하는 노동자, 농민을 동원한 터키 쿠르드족 민족주의 혁명을 통해 쿠르드족 만의 독립국가를 건설한다. 이후 건설된 쿠르드 민족국가에서 잔존하는 봉건적,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쿠르드식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진행한다. 이후에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과 같이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이상적인 공산주의로 진보하는 계획이었다(박주성 2017 157-158).

2. 민주적연방제

PKK의 쿠르디스탄 공산사회 건설에 대한 열망은 20세기 말 공산주의의 붕괴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불가피하게 노선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소련 해체 이전에도 PKK는 테러의 형태로 표현되는 다소 과다한 일련의 무장 투쟁 과정을 통해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했었다(Strozier & Frank 2011 10; 박주성 2017 159 재인용). 이러한 다양한 시대적 변화가 외잘란으로 하여금 PKK 창당 초기와는 차별화된 노선을 채택하도록 압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1995년 1월, PKK는 5차 당대회에서 PKK 당기에서 맑스-레닌주의, 공산주의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낫과 망치’를 제거하기로 결정한다([그림 1] 참조). 이에 대해 외잘란은 시리아 도피 시절인 1998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낫과 망치를 당기에 넣는 것은) 선전에 불과하다. … 소련은 붕괴되었지만, 미국은 어째서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바로 공산주의는 정부를 너무 강력하게 만들고, 개인을 아무 것도 아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Middle East Quarterly 1998).

상기 인터뷰를 마친 이후 1년 뒤인 1999년, 외잘란은 케냐에서 터키 대(對)테러 부대에 의해 체포되어 마르마라 해상의 임랄리(İmralı) 섬 소재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게 되었다(Aljazeera 2019). 임랄리 감옥에서 외잘란은 PKK 지지자들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 과거 자신들이 선택했던 민족 해방 이념으로서의 맑스-레닌주의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이에 외잘란은 맑스-레닌주의를 재해석하여 창안한 민주적연방제(Democratic Confederalism)를 차후 PKK의 미래 정치 및 투쟁 이념으로 제시했다(박주성 2017 164).

PKK 당기 변화 *왼쪽부터 1978-1995, 1995-2000, 2000-2005, 2005-현재까지 사용되는 당기

외잘란은 『민주적연방제』에서 기존 자신들의 공산주의 이념과는 최대한 차별화를 위해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필자는 PKK의 정당 창립 선언문인 “쿠르디스탄 혁명으로의 길(Kürdistan Devrimi’nin Yolu)”과 외잘란의 “민주적연방제(Democratic Confederalism)”의 2011년 영어 번역본에서 총 4가지의 키워드를 각각 쿠르드어, 영어로 검색해보았다. 결과는 [표 4]와 같이 『민주적연방제』에서는 필자가 선택한 키워드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외잘란은 『민주적연방제』에서 지면의 약 절반가량을 할애하여 민족국가(Nation-state)를 비판한다. 외잘란은 지난 역사 속에서 존재해온 민족국가들을 나열하며, 국가라는 기제가 어떻게 자본가들의 권력 유지 수단이 되어왔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Öcalan 2011 7-18). 또한, 외잘란의 입장에서 쿠르드족을 위한 독립국가 건설 요구는 쿠르드족 내부에서도 하위 계층을 착취하는 지배 계층의 요구이기 때문에 쿠르드인들의 진정한 해방이라고 할 수 없으며, 쿠르드 민족해방의 목표가 쿠르드 민족국가 건설은 더더욱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Öcalan 2011 19). 이는 이전에 외잘란이 민족주의 혁명을 통해 터키로부터 독립된 쿠르드족 민족국가 건설을 주창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표 3] 참조).

창립 당시 목표였던 PKK의 범쿠르디스탄 공산주의 체제 건설이라는 목표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민주적연방제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이라고 하자면, 전자는 식민착취 정권인 터키로부터의 쿠르드인 해방을 통한 공산주의 목표 달성이 과업이었다면, 후자는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희미하게 만들어 혁명의 필요성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 전개로 외잘란은 PKK 당원들을 맑스-레닌주의의 깃발 아래에 결집시키면서 동시에 과도한 무장 투쟁으로서의 비판을 피해가고자 했다. 하지만 사실상 외잘란의 민주적연방제 선언은 터키 통치 하에서의 무정부 공동체 탄생이기 때문에 일각에서 터키 통치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박주성 2017 170).

외잘란은 민주적연방제를 “비국가 정치 행정(non-state political administration)”, 혹은 “국가 없는 민주주의(democracy without state)”라고 표현한다. 민주적연방제에서 모든 권력은 공동체의 합의에서만 나오며, 입법 과정 또한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진행된다. 또한, 민주적연방제는 유연하고, 다문화적이며, 반(反)독점적이다. 외잘란은 이러한 민주적연방제의 유연성으로 인해 생태주의와 페미니즘도 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민주적연방제의 다양성과 유연함을 바탕으로 사회의 자본은 구성원들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들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외잘란은 주장한다(Öcalan 2011 21).

외잘란은 민주적연방제는 그 누구와도 전쟁 상태 혹은 투쟁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국경의 희미성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다른 국가들의 합병 시도가 있다면, 이에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며, 이를 위해 일종의 자위대(自衛隊)를 항시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Öcalan 2011 28). 나아가, 민주적연방제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인류는 국가라는 속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Öcalan 2011 32).

정리하자면, 외잘란이 주장하는 민주적연방제는 무정부주의(Anarchism)의 일종이며 공동체들의 집합이 정부나 국가를 대신하는 체제이다(박주성 2017 170). 현재 쿠르드족이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4개국의 국경에 의해 나뉘어져 존재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각각의 쿠르드족이 각자 민족주의 혁명을 일으켜 범쿠르디스탄 체제를 확립하는 것보다, 단순하게 국가와 국경의 의미 자체를 희석시켜 자연스럽게 쿠르디스탄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이론상 편리해 보이기는 한다.

 

III. 결론

지난 20세기,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라는 신념 하에 소련의 비호를 받으며 민족해방이라는 목표를 가진 민족주의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나,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역설했듯이 자유민주주의가 이념 전쟁에서 승리하며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시대가 종식되었다. 이에 PKK를 비롯한 기존 공산주의 노선의 단체들은 변화의 갈림길에 봉착했다. 이에 PKK의 지도자 외잘란은 민주적연방제라는 대안을 내놓았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외딴 섬 감옥에 수감되며 터키라는 강력한 벽에 부딪혀 터키가 주도하는 질서에 순응하고 최소한의 자치권을 확보하자는 의도로 읽혔다. 또한, PKK는 이러한 지도자의 정치노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사회로부터 테러 단체로 낙인 찍혀있으며, 그 조직원들은 폭력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본고를 작성하면서 PKK의 폭력성과 그 위협이 노선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지속되는 이유와 외잘란 수감 이후 그의 영향력이 PKK에 얼마나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PKK를 비롯한 쿠르드족 문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 이슬람학자 페툴라 귈렌(Fethullah Gülen)의 미국 망명 문제와 더불어 단연 터키 정부가 눈엣가시로 간주하고 있는 사안이다. 터키 정부가 PKK와 시리아 쿠르드족인 PYD/YPG를 얼마나 떨떠름하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4선 상원의원인 린지 그레이엄(Lindsey Graham)의 2016년 발언을 통해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2016년 4월,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애쉬 카터(Ash Carter) 당시 국방장관에게 PYD/YPG와 PKK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질문했다. 이에 카터 전(前) 장관은 PYD/YPG와 PKK의 관계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이 조직들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이 터키 정부 관계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에 직접 터키를 방문한 바 있는 그레이엄 의원은 미국의 쿠르드족 지원에 터키 정부가 매우 유감을 표하고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생각(dumbest idea in the world)이라 주장하고 자신도 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İleri 2016).

한국전쟁 참전국이기도 한 터키는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동 국가 중 하나이다(Daily Sabah 2021). 최근 들어, 터키-미국 관계가 냉랭해지며 미국의 동북아시아 우방국 중 하나인 우리의 입장도 곤란해질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앞으로의 한국-터키 관계가 한국-이란 관계와 비슷하게 연출될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최우방국 미국과 형제국인 터키 사이에서 최대한의 실리 외교를 펼치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며, 그 일환으로 대(對)터키 사안 중 중요도가 높은 쿠르드족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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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참고문헌

Mango, Andrew(1999). “Atatürk and the Kurds”, Middle Eastern Studies, 35(4), 1-25

김대성, 이지은(2018). “터키 테러리즘과 쿠르드 문제 : 시대별 특징과 글로벌 & 로컬 요일을 중심으로”, 『중동연구』 37(1), 1-30.

이희수(1995). “터키 쿠르드족의 분리주의 운동 – 그 배경과 전망 - ”, 『중동연구』 14() 175-222

저서

Marcus, Aliza(2007). Blood and Belief, The PKK and the Kurdish fight for Independence,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McDowall, David(2004). A Modern History of the Kurds, London, Bloomsbury Publishing.

Öcalan, Abdullah(2011). Democratic Confederalism, London, International Initiative

Strozier, Charles, & Frank, James(2011). The PKK: Financial Sources, Social and Political Dimensions, Saarbrücken, VDM Verlag Dr Müller.

박주성(2017), 『중동과 쿠르드 민족분쟁』, 광주, 전남대학교출판원

장병옥(2005), 『쿠르드족 배반과 좌절의 역사 500년』,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하름 데 블레이(2015). 『왜 지금 지리학인가(유나영 옮김)』, 서울, 사회평론.

인터넷자료

Aljazeera(Aug 9, 2019), “Jailed PKK leader Ocalan ‘ready for a solution’ with Turkey”, Aljazeera, https://www.aljazeera.com/news/2019/8/9/jailed-pkk-leader-ocalan-ready-for-a-solution-with-turkey(검색:2021.12.10.)

Al-Khalidi, Suleiman(Oct 12, 2015), “New Syrian rebel alliance formed, says weapons on the way”, Reuters, https://www.reuters.com/article/us-mideast-crisis-syria-kurds-idUSKCN0S60BD20151012(검색:2021.12.11)

Daily Sabah(Aug 23, 2021), “HDP co-chair calls for PKK leader Öcalan's release from prison”, Daily Sabah, https://www.dailysabah.com/politics/war-on-terror/hdp-co-chair-calls-for-pkk-leader-ocalans-release-from-prison(검색:2021.12.11.)

Daily Sabah(Jul 26, 2021), “South Koreans see Turks as ‘blood brothers’: Envoy”, Daily Sabah, https://www.dailysabah.com/politics/diplomacy/south-koreans-see-turks-as-blood-brothers-envoy(검색:2021.12.11.)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 Behavioral Sciences(2001), “Marxism/Leninism”,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B0080430767011748(검색:2021.12.11.)

İleri, Kasım(April 28, 2016), “US defense chief admits PYD, YPG, PKK link”, Anadolu Agency, https://www.aa.com.tr/en/world/us-defense-chief-admits-pyd-ypg-pkk-link/563332(검색:2021.12.10.)

Middle East Quarterly(June 1998), “Abdullah Öcalan: "We Are Fighting Turks Everywhere"”, Middle East Forum, 79-85, https://www.meforum.org/399/abdullah-ocalan-we-are-fighting-turks-everywhere(검색:2021.12.8.)

Rep. of Turkey Ministry of Foreign Affairs. “PKK”, https://www.mfa.gov.tr/pkk.en.mfa(검색:2021.12.8.)

Taylor, Simon(April 7, 1999). “Kurdish rights a key obstacle to Turkey’s acceptance by EU”, Politico, https://www.politico.eu/article/kurdish-rights-a-key-obstacle-to-turkeys-acceptance-by-eu/(검색:2021.12.11)

중포 22-03_터키 PKK의 정치노선 변화_민주적연방제를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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