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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야자 째고 촛불시위 참여한 이대남들이 왜 보수 정당을 선택했는가 - 2022 대선

MHMEI 발간물/MHMEI 시사포커스

by 박종현 중동 2022. 6. 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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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포인트 차이로 희비가 갈린 2022 대선 출처 : ZUM 뉴스

현재 2030 젊은 남성들의 보수화 성향은 가시적이나, 이것이 기존 보수 진영으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권력의 부패에 실망했고, 그 대안으로 촛불을 들어 새로 선출한 정부도 다른 공정성 훼손 논란, 경제 정책 실책으로 2030 세대를 실망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강력한 양당 체제가 확립되어 있는 한국 정치에서 다른 대안은 그 양당이라는 이분법 내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른 소수정당을 찍은 15%20대 여성들의 표는 사표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결과적으로 2030 젊은 남성 절반 이상이 윤석열을 선택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들 중 진심으로 윤석열을 대통령 후보로 바랐던 이가 몇이나 있을까? 개중에는 각각 경제, 과학 전문가로 자신들을 브랜딩한 유승민, 안철수를 지지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나, 압도적으로는 막말”, “홍카콜라홍준표에 기울어졌다. 이른바 준표 형을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신청하는 청년들이 폭주했을 정도니 말이다.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에서 각각 배신, 우유부단, 패배의 아이콘으로 삼던 이들에 대한 2030 남성들의 지지 자체가 이들이 보수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기존 보수 진영으로의 편입이라는 의미에서의 보수화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소위 이대남들은 왜 촛불혁명으로 끌어내린 보수 정당에게 다시 권력을 주었을까? 본고에서는 그 이유를 네 가지 정도로 분석한다.

시대의식의 부재

20209, 시대전환 조정훈 국회의원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향해 한 발언이다.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분들은 국민 10분 중 3분에 불과합니다. (중략)쉽게 얘기하면, 우리 청년들은 분단이 불편하지 않은 세대입니다.”

지금을 기준으로 6070 세대들은 이른바 산업화세대로 모두 어려웠던 시기에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고자 했고, 또 이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세대다. 4050 세대의 경우, 군부 정권을 타도하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실현시킨 민주화세대다. 반면, 2030 세대의 경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다 같이 이루어내야 할 목표의식이 사실상 부재하며,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민족이자 동포였던 옆의 사람들과 무한 경쟁해야 하는 세대이다. 이른바 생존주의세대인 2030 세대에게는 남북통일과 국내정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안을 실용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후술할 것이나, 2030의 경우 성별 간 정치 성향이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세대인데, 필자는 이러한 생존주의적 현실이 젠더 간의 불협화음을 조장했다고 본다.

전 정부와 집권여당의 실책과 도덕성 약화

집권 초기 5대 인사원칙의 미흡한 이행부터 공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 조국 전 장관 자녀 입시 비리 및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인국공 사태),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추진, 마지막으로 보수 진영보다 적어도 도덕적으로는 앞섰다는 평판도 무안하게 만든 제 1, 2도시 광역단체장들의 잇따른 성추문까지, 정권 교체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망각할 정도의 집권여당과 정부의 실책은 2030 세대를 실망시키기 충분했다. 또한, 청와대에 대한 친중, 친북프레임은 반중 의식과 비교적 보수적인 안보관을 가진 청년 세대들의 불만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거기다가 청년 세대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동산 정책마저 실패하면서, 청년 세대들 특유의 실용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능력주의적인 관점에서 현 집권세력들을 비난하고 교체할 명분은 충분히 누적됐다.

그러나 이는 청년세대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실망감을 가질만한 사안으로 이대남들에게만 해당하는 원인은 아니긴 하다.

보수 진영 변화의 시그널 : 정치 참여의 카타르시스

촛불시위가 한창 진행될 당시인 2016, 청년들에게 보수는 부정부패와 동의어였다. 특별한 사과 없이 직전에 탄핵당한 정당의 후보로 나온 홍준표에게 20대 남성들은 야권 단일화에 실패한 안철수, 유승민보다 못한 득표 14%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던져줬다. 5년 뒤 홍준표에 대한 이대남들의 반응은 역전되었다. 홍준표에 대한 이러한 역전된 평가는 하태경, 이준석과 같은 정치인들이 이대남들의 정치 참여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등의 통계자료를 참고하면, 20대 여성의 고용률이 20대 남성보다 약 2~3% 정도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30, 40대로 올라가면 그 비율이 극적으로 역전되긴 하나, 20대 남성들이 20대 여성들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주기는 한다. 이러한 상황을 이대남 입장에서 본다면, 가뜩이나 여성들이 취업도 더 잘되는 것 같고, 병역 문제로 2년가량 출발선에서 뒤처지는 상황인데, 성평등 정책들로 인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는 것 같다는 피해 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이 이해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3선 국회의원인 하태경 같은 정치인이 이대남을 변호해주는 언사를 하고, 하버드출신으로 스마트한 이미지를 가진 이준석이 공중파 토론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을 말 그대로 격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공정성 문제와 역차별 피해의식에서 불만을 느끼던 이대남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실제 정치에 반영이 되는 것을 목격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또한 19대 대선에서 참패하긴 했으나, 이대남들이 자주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밈(meme)처럼 계속해서 사용되며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홍준표가 여야 가리지 않고 기성 정치 세력들에 자기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보면서 이대남들은 홍준표가 막말이기는 하지만 맞말(맞는 말)’이기도 하다.”라고 느꼈다. 홍준표는 경선에서 윤석열에 패한 이후에도 청년의 꿈이라는 소셜 플랫폼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며, 청년 세대의 지지라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을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2030 남성들의 보수 진영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했다.

젠더 갈라치기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확실한 것은 대부분의 이대남들은 이재명을 선택하는 것에 비교적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본디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청년 세대들에게 보수와 진보는 효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선택지에 불과하다. 민심과 역행하는 당심으로 홍준표가 경선에서 패한 이후, 국민의힘 탈당이 빗발쳤던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나날이 떨어져 가던 윤석열의 지지율에 반전을 준 것은, 젊은 당 대표와의 내홍을 극적으로 봉합한 이후 SNS에 게재한 여가부 폐지” 5글자였다.

이재명 대선캠프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 등 실용적인 정책을 모토로 친()청년 정책을 펼쳤으나, 선거 막바지에 들어서는 이대녀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거 막바지에 과격화된 양당의 젠더 갈라치기로 성평등 정책에 민감한 2030 남녀들이 보수와 진보 진영에 고립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청년층에서는 비교적 명분이 약했던 차마 상대 후보는 못 찍겠다.”론의 명분이 선거 막바지에 양당의 젠더 갈라치기로 강화된 것이다. 양당의 젠더 정책에 의한 고립은 2030 남녀들에게 비슷하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각 성별이 각각 약 50:30의 표를 주고받게 되었다.

선거 전략으로는 유용했겠으나, 젠더 정치를 당론으로 채택하게 되면 젠더 이슈에 예민한 남녀 청년들에게 사실상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과 비슷하게 작용할 것이다. 투표 동기가 상대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땅의 젊은 남녀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우리 정치를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은 자명하다. 지지층 결집에 이만큼 달콤한 전술은 찾기 힘들 것이나, 그것이 독배라는 점은 인지해야 한다. 젠더 갈라치기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서두에서 이대남의 보수화가 기존 보수 진영으로의 편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보수 진영에는 이번에 새로 유입된 2030 젊은 보수층과 6070 기성 보수층 간의 불편한 동거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보수적 안보관과 정권 심판론이라는 깃발 아래에 전략적 동거를 하는 것이지, 절대 하나로 융합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20대 대통령 후보 경선과 최근 치러진 경기지사 경선에서 민심보다 당심이 캐스팅 보트를 던진 것이 그 증거이다.

새 내각 인사 차원에서도 일부 청문회가 진행 중이거나, 아직 진행 전이기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에 파열음을 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많다. 언론을 통해 자주 소통하겠다던 당선인은 용산 집무실 이전 기자회견 이후로는 크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는 것에 희열을 느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 이대남들이 실제 정치적 결정이 자신들의 의사에 역행하는 것을 더 자주 목격하고, 공정과 정의의 수준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판단하게 된다면, 지금의 청년세대 정치 지형도는 충분히 역전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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