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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포커스] 이슬람과 대추야자

박종현 중동 2022. 1. 22. 19:19

이슬람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음식, 대추야자

중동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바로 드넓은 사막과 선인장, 낙타를 탄 베두인들, 그리고 이들이 쉬었다가는 오아시스가 존재하는 풍경이다. 척박하기만 해 보이는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구세주처럼 마른 목을 적셔주는 오아시스는 그러한 특성 탓에 척박한 우리 인생 속에서 보금자리 및 휴식처를 뜻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사막 한 가운데 기적처럼 샘솟은 물웅덩이인 오아시스 주변으로는 항상 줄기가 길쭉하게 뻗은 야자나무가 자라난다. 이 야자나무들에서 자라는 열매인 “대추야자(Date Palm, التمر)”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중동하면 머릿 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사진은 중앙아프리카 차드의 응앵가 세리르 오아시스를 지나는 캐러밴의 모습이다.

대추야자는 건조하고 척박한 중동의 모래폭풍 속에서도 버티는 강인한 생존력을 가지고 있는 사막 야자나무의 열매로 수 천년동안 이 지역에서 주식이 되어왔다. 또한, 유목 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에게 대추야자는 휴대하기도 편리한 식품이었으며, 영양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음식이었다. 우선 대추야자는 세상에서 가장 단 천연과일이라고 불릴 만큼 당분이 매우 높고 고열량인 음식이었기 때문에 식량을 구하기 힘든 유목 생활을 하던 과거 아랍인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추야자가 고열량 식품이기에 오늘날 아랍인들 사이에서 우리의 암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당뇨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추야자는 아랍인과 이슬람의 역사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음식이며 후술할 것이지만, 이렇게 대추야자가 과거 아랍인들에게 고마운 음식이었던 것이 훗날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에 그대로 반영되어 지금까지 무슬림들 사이에서 고마움을 넘어 신성한 음식으로 추앙받게 된다.

이누이트어에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여러 개라든지, 예의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인 우리나라에서 존칭에 사용되는 단어가 발달했다든지, 언어 구사자들이 중요시하는 것들에서는 언어가 더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어 발달하기 마련이다. 아랍어에서 대추야자도 마찬가지이다. 아랍인들은 대추야자를 익은 상태에 따라 달리 부른다. 예를 들어 익지 않은 상태의 대추야자는 킴리(Kimri), 완전히 익은 상태의 대추야자는 칼랄(Khalaal), 익어서 부드러운 상태의 대추야자는 루탑(Rutab), 익은 대추야자를 말린 것은 타므르(Tamr)라고 부른다. 가장 상용화된 상태의 대추야자는 타므르이며, 보관의 용이함 때문에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대추야자들도 대부분 타므르 상태의 대추야자가 수입된다. 또한, 대추야자 과일 자체를 아랍어에서 ‘타므르’라고 부르기 때문에 대추야자를 통칭하기 위해 타므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된다.

익은 정도에 따라 명칭이 달라지는 대추야자

2021년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 통계 데이터베이스(FAOSTAT)에 따르면, 전 세계 대추야자 최대 생산국은 이집트이며, 그 뒤로 이란,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이 있다(AgMRC 2021). 대추야자 자체가 사막에서만 자라는 식물이기 때문에 주요 생산국들이 모두 중동 국가들이다. 우리나라에는 UAE의 데이트크라운(DateCrown)사(社) 등이 정식 수입되어 유통되고 있다.

이슬람과 대추야자

무슬림들의 식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할랄과 하람이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을 의미하며 문자 그대로 신이 허락한 음식을 뜻하고 무슬림들은 이 할랄 음식만을 먹을 수 있다. 하람은 아랍어로 “금지된”을 의미하며 무슬림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의미한다. 종교에서 교리로 신자들의 식문화를 통제하는 것은 이슬람만의 유별난 특징은 아니며 유대교, 초기 기독교 등에서도 나타났던 특징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종교의 발생지가 척박한 사막 환경의 중동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 의거해 많은 학자들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상한 음식 등을 섭취해 탈이 나는 것을 방지하거나, 돼지와 같이 인간과 식량 경쟁을 하는 가축들을 멀리하기 위해 신의 권위를 빌려 특정 음식들을 금지했다는 것에 의견을 일치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추야자는 당시 중동 사람들에게 매우 권장되어 마땅한 음식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났으며, 관리도 편하고 식사를 잘 챙기기 힘든 유목민들에게 고열량의 영양소를 공급해주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음식이었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서 대추야자는 정확히 22번 언급된다(Ahmed 2017). 이는 이슬람과 예언자 무함마드가 대추야자를 얼마나 각별히 여겼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슬람 역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자면 예언자 무함마드와 초기 개종자들의 메디나 이주(히즈라)를 꼽을 수 있다. 이슬람 출현 당시 메카에서는 많은 수의 신을 섬기는 다신교가 유행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기에 예언자 무함마드는 유일신 종교인 이슬람을 창시하게 되었다. 당시 메카의 유력 부족들은 다신교를 일종의 최대 수익 사업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예언자 무함마드의 유일신 종교 이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성행하자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이에 메카의 유력 부족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이슬람 초기 개종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으며,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에 옆 도시인 야스리브(이후 메디나로 개칭)로 이주하게 된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 이주 결정은 이슬람이 초기에 진압되지 않고 융성하게 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에 따라 이슬람 달력의 원년도 이렇게 이주를 한 서기 622년으로 정해지게 된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초기 개종자들은 메디나로 이주하는 도중 메카 부족들의 추격을 받게 되는데, 이 때 이들이 섭취하며 연명한 음식이 대추야자 5알이었다. 대추야자가 없었더라면 이슬람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슬람에서 중요한 입지를 확고히 해간 대추야자는 이후 이슬람 문화 곳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무슬림들의 의무 중 하나이자 매년 1개월씩 단식을 하는 라마단 행사에서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에는 물조차 입에 대지 않으며, 신실한 사람들은 입에 고이는 침도 뱉어낸다고 한다. 이윽고 해가 지게 되면 무슬림들은 하루의 첫 식사를 하는데 이것을 ‘이프타르’라고 부른다. 이프타르는 하루의 단식을 종료하는 신성한 식사로 무엇을 먹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서는 이프타르로 대추야자를 섭취할 것을 권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 힘들게 단식을 한 만큼 축복받은 음식인 대추야자로 그 단식을 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믿음에서이다.

또한 대추야자는 무슬림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먹는 음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슬림은 아기가 태어나면 타흐니크(Tahneek)라는 통과의례를 거치게 되는데, 이는 대추야자 즙을 갓 태어난 아기의 입에 넣어 문질러주는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은 대추야자가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 준비해주신 좋은 음식이라는 무슬림들의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무슬림들은 신생아에게 타흐니크 의식을 치름으로서 아이가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신생아에게 타흐니크 의식을 치르는 모습

이처럼 대추야자는 식량이 부족했던 과거 중동 사람들에게 있어 신의 축복과 같은 음식이었고, 이것이 이슬람의 전통에 그대로 반영되어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문화권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이전보다 삶이 척박해진 오늘날, 언젠가는 우리를 맞이해줄 오아시스를 전망하며 신의 축복을 한 몸 가득히 받은 열매인 대추야자 한 알 꺼내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중포 22-01_이슬람과 대추야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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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짐

더보기

AgMRC(2021). “Commodities & Products – Dates”, https://www.agmrc.org/commodities-products/fruits/dates(Search : 2022.01.04.)

Ahmed, Madeeha(Feb 6, 2017). “Why the Scrumptious Date is So Important to the Muslim World”, Smithsonian Magazine